[펌]어린이집, 언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이를 언제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가정마다 여건이 다르고 어린이집에 "보낼 수 밖에 없는"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인터넷을 좀 보다가 정식품 홈페이지 게시되어 있던 "어린이집, 언제 보내는 것이 좋을까?"라는 글을 보고 크게 공감하여 여기에 백업해 둔다. 원본은 여기를 클릭하면 된다.


과거와는 달리 많은 아이, 아니 거의 대부분의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많아졌고, 국가에서 보육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크게 작용하며, 전업주부라고 할지라도 휴식 시간 확보 및 아동의 질 좋은 보육을 기대하는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엄마가 아이를 직접 온종일 돌보면서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엄마는 자신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의 정서와 발달 측면에서 더욱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음이다.
필자는 간혹 엄마들로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언제 보내는 것이 좋아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여기에는 엄마가 직면한 환경적 상황과 아이의 발달적 측면이 어우러져서 답변이 나올 수 있는데, 소아정신과 전문의로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엄마(일차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다.



애착이란 누군가와 맺는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말한다. 아이의 경우 일차 양육자인 엄마와 애착 관계를 맺는다. 아이가 태어난 후 아이를 보살피고 키워주며 사랑해주는 사람은 엄마다. 아이는 그런 엄마와 매 순간을 보내며 점차 ‘아! 이 사람이 나의 엄마로구나! 우리 엄마는 내가 불편할 때 나의 불편을 해소해주고, 나를 보호해주며, 나를 위하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야.’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인식과 함께 엄마와 가까이 있을 때 포근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되어 더욱더 엄마 곁에 머물고자 한다. 점차 엄마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감정이 최고조에 도달하고,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게 될 때쯤 아이는 서서히 엄마와 분리를 시도한다. 자신도 독립된 개체임을 추구하는 것이다. 혹은 엄마가 자신과 떨어지려고 할 때도 엄마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에 별 탈 없이 잘 지낸다.

만일 엄마와 떨어질 때 저항하거나 울면서 힘들어하는 아이가 있다면 ‘분리불안(또는 이별불안)’의 수준이 높은 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는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히 동생이 태어난 다음에 어린이집에 가는 경우라면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집에서 쫓겨나는 느낌마저 들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아이와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긍정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후에 어린이집을 보낼 것을 권유한다.

 

둘째, 아이의 의사소통 능력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다는 것은 단체생활의 시작을 의미한다. 또래 아이들이 2명이든 3명이든 혹은 그 이상이든 상관없이 아이는 함께 교류하면서 소통한다. 이때 아이의 언어능력이 무척 중요하다. 또래에 비해 언어발달이 뒤처지는 아이의 경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아이가 ‘나는 너와 이 장난감으로 재미있게 놀고 싶어!’라는 말을 건네고 싶으나 그러한 표현을 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상대방 아이 앞에 놓인 장난감을 덥석 집는다. 상대방 아이는 자신이 놀고자 했던 장난감이 빼앗긴 듯하여 “왜 그래? 내가 갖고 놀 거야?”라면서 쏘아붙인다. 아이는 ‘그게 아니고 나랑 이 장난감으로 함께 놀자.’라는 설명을 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에 이번에는 상대방 아이에게 손을 뻗쳐서 만진다. 그러자 상대방 아이는 짜증을 내며 “너 왜 그래? 선생님 OO가 제 장난감을 뺏어요.”라고 외친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상대방 아이를 밀치고, 때마침 달려온 선생님이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다.
아이가 폭력적인 아이, 남을 괴롭히는 아이, 행동이 거친 아이로 낙인찍히는 순간이다. 또래들과 교사의 부정적인 피드백이 이어지고, 그들의 부정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어떤 아이들은 심지어 “너 왜 말 못 해?”라면서 직접적으로 지적을 한다. 결국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는 것을 싫어하게 된다. 더욱이 어린이집으로부터 사실을 전해 들은 엄마는 아이를 야단친다. 아이는 이래저래 자신의 억울함을 표현하기조차 버겁다.

이러한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으니 의사소통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거나 혹은 또래와 비교해서 언어발달이 뒤처지지 않은 것이 확인된 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좋다. 간혹 말이 느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말을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맞는 말이며,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이는 또래와 손위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로부터 언어적 자극을 받아 언어 습득을 이룬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무척 운이 좋은 경우다. 혹은 아이가 언어적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한 대신에 비언어적 의사소통 능력이 충분하거나 더 나아가 사회적 친교 능력이 뛰어난 경우에 해당한다. 결론적으로 언어적 의사소통 능력이 충분하거나, 비언어적 의사소통 능력이 언어적 의사소통 능력을 대체할 수 있거나,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지만 사회적 친교 능력이 뛰어난 경우에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아이의 대소변 조절 능력이다.



아이가 기저귀를 떼고 스스로 변의를 표현하여 변기에 대소변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어린이집에 안심하고 보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매우 어린 영유아들도 어린이집에 다니고, 온종일 어린이집으로부터 돌봄을 받으며 기저귀를 교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왕이면 엄마가 직접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면서 엄마와 아이 간의 애착 관계를 강화하고, 아이의 대소변 훈련을 시키며 아이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대소변 훈련 중에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수치심은 향후 성격 형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엄마가 아이의 수치심을 덜 느끼도록 대소변 훈련 과정에 직접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가 비로소 대소변 조절 능력을 완성한 다음에 어린이집에 갈 경우 아이의 수치심 경험이 거의 없을뿐더러 대소변 처리에 대한 부담감도 없앨 수 있다. 게다가 다른 또래 아이들이 변기를 능숙하게 이용하는 반면 아이 본인은 기저귀를 차고 있거나 대소변 실수를 하는 것을 인식할 때 생기는 비교 열등감 또한 막을 수 있다.

이처럼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 고려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어린이집에 언제 보내는 것이 좋을까? 여기에는 개인 별 차이가 있게 마련이지만 필자의 견해로 연령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만2~3세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좋고,
다소 발달이 느린 아이라면
만 4~5세에 보낼 수 있음이다.


첨언 하자면, 분리불안이 예상되지 않고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되고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하고 난 후라면 만2~3세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좋다는 의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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